{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현이 넘 논리정연한 글을 보고 스크랩함

혹시 지워질까봐 복사해서 가져왔다}


원본출처: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14&eid=dYKY5U70AkADA+04elyxEvyqekdXQu3H&qb=sObH4r3Fua7H0cit&pid=fbVGWdoQsDZsscdzPNZsss--124543&sid=iwl61ZtbY0gAADNrP0wAAAAS


질문 : 경향신문이 더 좋아요? 아니면 한계레신문이 좋아요?



답변 : 경향신문도 좋은 신문이고, 한겨레도 좋은 신문입니다.


그런데 한겨레를 몇몇다른분들이 이상하게 말씀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경향이나 한겨레나 논조는 비슷합니다.


역사때문에 사람들 이미지 차이가 있지만요.  


저는 한겨레 추천드려요.


사회학에 대해 관심있으시면


칼럼을 많이 읽으시면 좋은데


조국교수나, 박명림교수, 조정래씨, 정혜신씨, 우석훈씨, 홍세화씨 박노자교수같은


좋은 글쟁이들이 유익한 글 많이 써주시거든요


칼럼만이라도 읽어보시더라도 한겨레에 대한 오해는 안하실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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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

A : 진보 언론의 역사

B : 조중동의 문제점

C : 진보언론에 대한 오해


'진보언론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 글을 쓰려다, 앞의 글이 길어졌습니다.

시간 없으시면 '진보언론에 대한 오해'에  링크된 기사라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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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진보 언론의 역사


1988년과 1998년과은 대한민국 언론사에 가장 뜻깊은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1988년은 한겨레가 창간되어 첫  신문이 발행되 해이고


70·80년대는 한국 언론의 암흑기였다. 군사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워 뜻있는 언론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언론 현장에서 이들을 내쫓고, 감옥에 가둬 고문했다. 정권이 언론인 대량 해직을 주도했고, 언론사주가 이를 도왔다. 뜻있는 언론인들은 모두 거리로 내몰렸다.

번역 원고를 쓰면서,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해직 기자들은 오직 참언론의 꿈을 꾸었다. 정치가의 칼 앞에 두려움이 없고, 자본가의 돈 앞에 구차함이 없는, 그래서 오직 사실과 진실을 전하는 진정한 자유언론을 꿈꾸었다.

87년 6월항쟁은 그 꿈을 실현할 바탕이 됐다. 민주항쟁에 굴복한 군사 정부는 신문 창간의 자유를 허용했다. 87년 9월, 전·현직 언론인 196명이 ‘새 신문’ 창간을 발의했다. 10월에는 각계각층의 3000여명이 참가해 창간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본격적인 국민모금을 펼친 지 108일 만에 2만7000여명이 참여해 창간기금 50억원을 모았다.

참언론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 힘입어 87년 12월, 세계 언론사상 최초의 국민주 언론, 한겨레신문사를 창립했다. 고물 윤전기를 들여 와 고치고, 공장 건물을 전세 내어 편집국을 차렸다. 민주적 편집위원회 제도를 만들고, 개별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윤리강령을 채택했다. 보도의 금기와 성역을 부수고, 오직 사실과 진실에 입각해 기사를 쓰기로 결의했다. 순한글 가로쓰기 전면 편집, 컴퓨터 조판·제작 등을 종합 일간지 사상 처음으로 도입했다. 88년 5월15일, 36면에 걸친 한겨레신문 창간호가 세상에 선보였다. 진정한 자유언론의 시작이었다. 



1998년은 경향신문이 독립언론이 된 해입니다.


경향신문은 1946년 10월 창간되었습니다. 진보적인 색채를 띤 신문으로 이승만 정권의 부패를 고발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이에 1959년 정부에 의해 폐간되었습니다. 복간했으나 과거의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군사정권시절 정부의 앵무새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0년 8월부터 1998년 3월까지 7년 8개월 동안 한화그룹을 모기업으로 한 이른바 ‘재벌언론’의 소유구조를 유지하다, 1998년 4월 한화그룹과 분리된 후 사원들이 100% 신문사 주식을 소유한(현재는 중소기업 및 퇴직사우 지분 등으로 87.19%) 완전사원주주회사로 소유구조가 변했습니다.
재벌그룹 산하에 있던 신문사가 제호와 인적 구성이 유지된 채 완전 사원주주 신문사로 소유구조가 탈바꿈한 것은 세계언론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1946년 창간이래 6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중앙 일간지가 외부 간섭이나 압력 없이 사원들의 의지만으로 4년여 동안 독립적으로 신문을 제작해 왔다는 사실은 주목받기에 충분합니다. 사원주주제 경향신문사에서는 사장을 공개모집하고 편집국장을 직선으로 뽑으며 독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상에 ‘언론딴지걸기’와 ‘e옴부즈맨’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사내 언론민주화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구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원주주제를 통해 소유구조의 변화이후 보도가 더욱 공정해졌으며, 보도 성향은 진보적으로 변했고, 노동쟁의 등의 갈등적 이슈 보도 태도는 노조 옹호적으로 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기자에 따르면 이 같은 보도경향의 변화를 ‘사주의 간섭이 소멸됐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재벌언론 시절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소유구조상 자본가나 광고주 등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보수적, 친재벌적 시각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는데다 사주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에 따른 보도통제로 보도내용이 왜곡돼 불공정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출처 : 네이버지식인
:show_id_layer(this,'sj2147','KIN','614','186485');" href="http://memolog.blog.naver.com/javascript:void(0);" target=_blank>sj2147님 답변 )




올해로, 한겨레가 창간된지 이제 20년, 경향신문이 독립언론이 된지 10년입니다.


국민의 손으로 탄생한 한겨레는 지난 20년동안 진보언론으로  국민을위해 보도해왔습니다.

그러나 진보와 좌파의 역사가 약한 우리나라에서, 진보언론으로서 많은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그당시 언론들은 정권이나 기업과 유착해, 국민에게 진실을 숨기고 왜곡보도를 일삼으며 또하나의 권력으로 군림하였습니다.

한겨레는 이런 잘못된 언론 현실을 개혁 할 목적으로 태어난 만큼, 기자들의 잘못된 '뒷돈' 관행을 처음으로 밝히고,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당시에는 '불순'했던 기사들을 보도를 하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였습니다.

-> (겨우 10여년 전 일이다. 그 때까지도 북한은 ‘북괴’였다. 심지어 중국도 국가가 아닌 ‘중공’이었다. 남한의 국방부가 ‘북괴’를 ‘북한’으로, ‘북괴군(괴뢰군)’을 ‘북한군’으로 바꿔 부르기로 한 것은 남북정상회담 한달 뒤인 2000년 7월이다. 신문들도 2000년 6월 이후에야 ‘김정일’ 뒤에 ‘국방위원장’ 직함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이런 한겨레의 논지와 행보는, 보수일색의 주류 언론들과 대결하였는데, 때문에 실체없이 사람들로부터 '빨갱이', '친북언론'이란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에 입각한 보도와 성역없는 보도를 통해 한겨레는 언론업에 종사하는 전문가와 동료기자들로부터 '신뢰도1위'의 평가를 지금껏 받아오면서 창간초의 어려움을 딛고 대한민국 대표진보언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한겨레가 10년이라는 세월을 버티면서 시대는 변했고, 결국 외환위기 속에 진보진영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집니다.

 비슷한 시기 정권교체의 변화만큼 언론 역사에도 큰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경향신문이 사주였던 한화로 부터 독립하고 사원들이 직접 회사의 주인이 되면서 1998년 독립언론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경향신문은 스스로 진보언론으로 밝히며(경향닷컴 회사소개) 국민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참언론으로서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있습니다.


또한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모든시민은 기자다'라는 표어를 내건 오마이뉴스와 중견기자들이 모여서 '관점있는 뉴스'를 제공한다는 프레시안 등 새로운 형태의 인터넷 언론들이 생겨났고, 이렇게 20년동안 우리사회는 '언론은 다양성'을 얻게되었습니다.





B : 조중동의 문제점


그러나 언론은 많아졌어도 아직 '여론의 다양성'을 얻지 못했습니다.

언론은 다양해도, 소수 언론의 여론 독점은 여전한게 현실입니다.


특히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세 신문사는

막대한 자금력으로 신문시장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여론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지만,

신문시장의 70%이상을 차지한 세 신문사들의

왜곡과, 이념공세 그리고 권력에 집착하는 보도행태는

국민들의 신문에 대한 구독률과, 신뢰도를 떨어뜨려

신문 존립의 가치 자체를 훼손시켜버렸습니다.


※ 미리 말씀드리는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보수언론이기 때문에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제목 역시 보수언론의 문제점이 아니라 조중동의 문제점입니다.)

사람들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보수논조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지,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1. 왜곡 보도


대표적으로 종합부동산세.

종합부동산세 대상자는 공시지가로 6억기준의 아파트로 실거래가는 수억짜리입니다.

부동산세 대상자도 전국민 2%미만입니다.

부동산세 대상자 2%가 단지 자기가 살 아파트를 한 채 씩만 가지고 있다면 종부세를 만들이유는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2채이상에, 그들 2%가 대한민국 국토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1년에 한번 내면서, 실효세율 1%도 못미치는 세금을 조선일보는 '세금폭탄'이라고 불렀습니다. 칼럼에서는 "종부세 때문에 '온국민'이 벌벌 떨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전국민 2%에게만 부과되는 세금때문에 '온국민'이 벌벌 떤다는건 누가봐도 지나친 과장입니다.

종부세는 세계적으로 심각한 우리나라의 부동산 과열을 막기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봐 종부세를 싫어하는 개인이 있겠지만, 사회적으로는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종부세에 대한 악의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는 종부세 해당도 되지 않는 6억미만 아파트까지 예로들어, 그 사람들도 세금을 내야할것처럼 사실을 왜곡한 명백한 왜곡 보도를 하였습니다.(미디어 포커스)


조선, 중앙, 동아가 종부세에 반대하는 건 비판하면 됩니다.

그러나 왜곡을 하는것은 비난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디어포커스▶http://news.kbs.co.kr/exec/program/sisa_list.php?prog_id=54&year=&month=&page=5

2007년  5월 19일 <185회> 2. [이슈&비평] ②언론의 아전인수식 프랑스 대선 보도

2007년  5월 26일 <186회> 1. [이슈&비평] ①대선 주자들이 보는 언론



2. 이념 공세


이번 광우병 사태에서 국민들은 최소한의 안전제한인 부위규제, 연령규제마저 풀어버린 정부에 항의했습니다.

80%의 국민들이 반대를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조선, 중앙, 동아는 이를 반미, 불순세력, 좌파로 규정하면서, 정치적 문제로 논점을 흐려버렸습니다.

또한 반대편의 논리를 '괴담'으로 깎아 내렸습니다.

어느정도, 부풀려진 정보는 있지만 그것 모두 '근거있는' 괴담입니다.

우리나라는 우유는 수입하지 않고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우유로도 감염된다는 말은 지나친 예라고 할수있습니다. 그러나 근거가 있는 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광우병걸린 소의 우유에서도  프리온이 검출되었다는 영국 연구소의 보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는 광우병이 우리나라에 발생한다면 현실이 될수있는 '괴담'입니다.

우리가 수입하는 소는 안전성이 결여되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조선, 중앙, 동아는 이를 반미, 좌파 세력의 선동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북한을 싫어하는 우리 언론들은 북한 위협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많은 이득을 봤습니다.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은 친북좌파로 몰아세워 죽이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과거의 잘못행태가 과거의 잘못으로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저지르고 있다는데 언론의 문제점이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불과 반년전에는 광우병의 위험을 누구보다도 앞장서 알리던 조선, 중앙, 동아일보가

정권이 바뀌자 광우병의 위험을 알리는 사람들을 "반미, 좌파 세력에 선동당했다"고 합니다. 

언론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OECD국가중 신문 구독률이 꼴찌가 되는데

이들 언론사의 역활이 컸다고 봅니다.


MBC 뉴스후 - 광우병 사태에서 보수언론의 태도변화

http://www.youtube.com/watch?v=AKphrXCr7No



3. 기득권 문제


제가 보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언론이라기보다는 신문업을 하는 기업입니다.

언론으로서의 국민에 대한 알권리와 기자 정신보다, 이득에 집착하며 기업주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조중동'이라는 신조어가 생길만큼 조선, 중앙, 동아는 누구나 인정하는 권력집단입니다.

다른 언론과 달리 유독 그들이 기득권을 집착하는 이유는, 기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주에 있다고 봅니다.



신문사가 지분구조만 봐도 그들의 언론으로서의 독립성은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기자가 기사를 써도 편집국에서 걸러져 버립니다. 신문의 논조를 보여주는 사설 역시 사주의 뜻에 의해 쓰여지게 됩니다. 위에 왜곡 사례로 적은 종합부동산세만해도, 조중동 고참기자나 사주들이 납세자에 해당됩니다. 그러니 종부세 반대를 위해 왜곡된 예를 무리하게 쓰는 것입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삼성비자금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을때 중앙일보 기자들이 경호원처럼 다른 동료기자를 폭행하고,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치는 모습에서 사주가 언론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언론이 독립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주로부터 독립하는게 필요합니다.

사주가 신문사를 소유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최소한 경영과 소유를 분리해야한다는 겁니다.


 


*

물론, 공정성과 신뢰성의 문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가장 심각하지만)

이는 모든 언론이 폐간될때까지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입니다.

이것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앞으로도 신문을 외면하고, 믿지 않을것입니다.


이런 잘못을 개선해나가려는 우리 언론들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국민들 역시

비판받는 것(모든의견에 해당)과 비난받는 것(조중동의 잘못)을 구분하지 못한고,

어쭙잖은 양비론이나 중도를 내세워 신문시장의 문제점과 여론을 흐려서는 안될 겁니다. 





C : 진보언론에 대한 오해


대표적으로 진보언론에 대한 오해에 대해 지적하고 싶습니다.

한겨레가 받는 오해는 경향신문이나 다른 진보언론에게도 해당될것입니다.

잠시만 진보언론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으시고 기사를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1. 진보언론의 권력에 대한 오해

한겨레와 진보언론이 국민의정부-참여정부시절, 정권의 나팔수였다?


이 점은 신문사로서 굉장히 억울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 한겨레는 소신을 가지고, 노무현 정권과의 잘못이라고 판단된 점을 비판하였습니다.

(낯부끄러운 ‘좌파적 분배정책’의 현실 / 한겨레 사설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85921.html)


정권초기에는 한겨레는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정부의 정책방향이, 한겨레의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이지, 정권에 아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언론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문제에서는, 정권을 비판하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한미자유무역협정입니다.

미국만의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해, 한겨레는 참여정부와 논쟁을 벌였습니다.  

(청와대-한겨레, FTA보도 정면충돌 /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395

청와대-한겨레 ‘쓴 소리’논쟁 종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809)


오히려 어떤분들은 한겨레가 지나치게 참여정부를 공격한다고 생각하셔서, 구독을 끊으신 분들도 많이 있는 걸로 압니다. 그분들이 구독을 끊으신 나름의 이유중에, 한겨레가 조금은 지나친 부분도 없지않겠지만, 분명한점은 한겨레는 정권에 아부하는 언론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노무현 정권 찻 사회 퇴보 평가 옳지않아" / 함세웅 신부 인터뷰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85940.html)

(노무현정부 한겨레 전문 인터뷰 / 대한민국 정책포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78&aid=0000033994&)


한겨레와 진보언론은 대표적으로 이라크파병문제, 비정규직법, 새만금, 대추리문제등 정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사안에는 적극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아스팔트 변호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24226.html)



2. 진보언론의 북한문제에 관한 오해


한겨레, 경향신문이 빨갱이 언론이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잘못된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나 경향신문등, 진보언론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언론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햇볓정책을, 북한에 퍼주기라고 말하는데,

북한에 대한 지원정책은,

퍼주기라고 비난하던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동의한 정책입니다.

게다가 왜곡된 자료로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것은 색깔논쟁일 뿐입니다.

(우물안 개구리들의 ‘남북 경협’ 셈법 / 한겨레 사설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241208.html)

지금은 미국 역시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되면서 지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보언론은 통일을 위해 북한과 대화 하길 원하는 겁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결단해야 할 것 / 한겨레 칼럼 / 김지석 논설위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28661.html

‘미사일 위기’넘어 6자회담 재개로 / 한겨레 사설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33072.html)

김정일을 찬양하거나, 북한의 적화통일을 바란다는 비난은 전혀 옳지 않습니다.


북한과 대화도 하고,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늘려나가는 것이

'통일을 하고 싶다면, 정말 통일을 할 마음이 있다면'

지켜야될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으로 통일하면, 통일 안하느니만 못한거고

오히려 중국이 전쟁으로 폐허된 북한을, 대리 점거해준다고 나오는 등

주변 열강들의 간섭이 심해질지 모릅니다.

만약 북한이 갑자기 망해, 급작스런 통일이 이뤄지면,

남북한의 심각한 경제차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의 통일비용 부담만 커질겁니다.

또한 남한 국민들과 북한 국민들들 사이의 경제적 우열감이나

여러 정서적 차이로 사회적인 통합 역시 어려울겁니다.


우리나라 경제를 생각해서라도,

북한과의 불필요한 마찰과 신경전을 벌여

신용등급의 위기가 오거나

한국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3. 진보언론의 경제문제, 노동문제에 관한 오해


한겨레와 진보언론을 '친북좌파언론'이라 매도하는 말 때문에,

경제문제에 대한 논조를 북한의 경제방향와 같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제가 본 진보언론의 경제논조는 유럽 국가들의 복지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경제모델도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이론에는 부작용이 있고, 부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는 겁니다.

공산주의는 실패한 사상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시 완벽한 사상은 아니었습니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수정자본주의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두 개의 유토피아 / 한겨레 칼럼 / 조순 서울대명예교수, 전 경제부총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136044.html)


즉, 시장주의, 자본주의를,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고

(21세기 독재-시장전체주의 / 한겨레 칼럼 / 박명림, 연세대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16927.html)

그에 대한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사회구성원들의 내적인 삶의 발전을 이루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위주의 왜곡된 경제구조를 비판하고,

(삼성 관리냐 창조냐 / 한겨레 칼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23257.html )

대기업보다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중소기업의 상황 개선을 주장합니다.

(납품업체 쥐어짜기로는 글로벌 기업 못된다. / 한겨레 사설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205460.html

중소기업의 실천에서 본 희망 / 한겨레 사설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46162.html)


진보언론은 공산주의를 주장하는게 아닙니다.

자본주의 안에서의 모순점을 고치면서

자본논리(돈)가 최고의 가치가 아닌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최고로 생각하는 그런 복지자본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

경제문제와 함께 중요한게 노동문제입니다.

진보언론이 노동자들을 대변하는것을 경제문제와 함께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노동자는 일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의사나 변호사도,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단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노동단체는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아닙니다.

노동자들 역시 생산에 참여하고, 월급을 받고, 시장에서 소비하는 주체들 입니다.
저들이 죽으면, 식구들까지 함께 죽고, 그들의 고통은 다시 사회의 부담이 될뿐입니다.


(불신의 현대차 ‘역주행’ 위기 / 한겨레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182637.html

혼다에서 배우는 현대차 해법 /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192714.html)

일부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도 문제입니다.

총수가 회삿돈 900억을 횡령하고, 회사자본으로 특정기업을 밀어주면서 간접적으로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그런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도 심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노동자들은 해고불안이나, 저임금,

세계 1위의 연간 근무시간 등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언론은 이런 문제를 계속 보도할 것입니다.

진보언론들의 보도를 반기업 친노동, 더 나아가 불순세력으로 생각지 않으면 합니다.

미래의 경제발전은, 한쪽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그에따른 부작용이 심각한 과거의 경제성장과는 다르게 이뤄져야하기 때문입니다.  

(‘일벌레’ 권하는 한국사회 / 김영환 한국인권재단감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81619.html)

([한겨레 창간 20돌] 한-미 경제학자 대담 ‘이명박 경제’를 진단한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98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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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의 신문법 왜곡기사를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1.정부지원금은 이자를 붙여서 몇년내에 다시 갚아야하는 공정한 기금입니다.
2.사용용도도 이미 지원서에 밝히게 되있어 감시을 받으며 독자권익보호기구를 위해 쓰이도록 되있습니다.

3.조중동또한 이미 부가세 운송료 감면등 정부의 지원을 오랫동안 받아오고 있습니다.
4.한겨레나 경향같은 소수신문은 소신껏 FTA, 비정규직, 새만금, 이라크파병, 대통령의 부적절한 처신 등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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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직접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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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드 호세이니| 왕은철| 현대문학
2007.11.20 | 576p | ISBN : 9788972754015

책내용


아버지의 하녀였던 어머니와 단둘이 외떨어진 오두막에서 사는 마리암의 소원은 단 한 가지, 부유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다. 혼외자로 태어나 사람들과 격리된 채 죽은 듯이 조용하게 살고 있는 마리암에게 아버지는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이다. 어느 날 마리암은 아버지에게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는 부탁을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는 오지 않고 결국 마리암은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 대문 앞에서 만나주지 않는 그를 밤새 기다리며 정실 자식이 아니라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마리암,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나무에 목을 매단 어머니였다. 부인으로 대접을 못 받았던 치욕을 견뎌온 마리암의 어머니는 자식에게 버림받은 절망감에 목숨을 끊은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후 마리암은 자신을 떠넘기려는 아버지와 그 부인들의 손에 이끌려, 열다섯 어린 나이로 마흔 다섯의 구두장이 라시드에게 팔리듯이 시집을 간다.
강제로 하게 된 결혼이었지만 남편의 다정함으로 버림받은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가던 마리암,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계속되는 유산과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남편 라시드의 구타로 그녀의 삶은 끔찍해진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삶, 그렇게 마리암은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모진 세월을 견뎌낸다.
내전으로 인한 폭격이 계속되던 어느 날, 마리암이 멀리서 동경하며 지켜보던 옆집에 폭탄이 떨어져 지식인의 딸인 열세 살짜리 소녀 한 명만 살아남는다. 소녀의 이름은 라일라. 라시드는 소녀를 구하고 마리암과 함께 돌봐준다. 가여운 아이를 돌봐준다고만 생각했던 마리암과 달리 평소 라일라의 아름다운 외모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라시드는 그녀를 둘째부인으로 삼는다.
지식인 부모를 가졌고 사랑하는 연인도 있는 라일라였지만, 부모의 죽음과 뒤이은 연인의 사망 소식, 그리고 자신의 뱃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연인의 아이 때문에 라일라는 라시드와의 결혼을 받아들이고 만다. 결혼 후, 라일라는 뱃속의 아이를 라시드의 아이로 속인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렇게 만난 마리암과 라일라. 처음 마리암은 자신의 삶에 그렇게 끼어든 라일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뒤 둘의 관계는 변화한다. 함께 아이를 돌보며 남편의 폭력 속에서도 진짜 가족의 사랑을 경험한다. 그리고 둘은 남편의 폭력에 용기를 내어 함께 맞서고, 라일라는 어머니 같은 마리암에게 의지하며 끔찍하고 비참한 생활을 견뎌나간다. 집밖에는 연일 포탄이 터지고 집 안에서는 언제 남편이 매질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두 여자, 그들의 가슴 벅찬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2007년 아마존닷컴 최고의 베스트셀러!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24주 연속 1위!

너무 슬퍼서 아름답고,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이야기
이 세상 모든 딸들의 가슴을 울리는 책!
전란의 포화가 휩쓸고 간 아프가니스탄.
그 폐허의 땅에 남은 두 여자. 절망과 고통뿐이었던 잔인한 시절을 살아낸 그녀들의 찬란한 슬픔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이야기!


2003년 데뷔작인 『연을 쫓는 아이』로 미국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 2007년 그가 혼신을 다한 두 번째 작품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출간 즉시 아마존닷컴 베스트 1위’, ‘24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 1위’, ‘출간 6주 만에 140만 부 판매 돌파!’ ‘영화화 결정’ 등 수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이 기록들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탄탄한 구성, 뛰어난 서사, 그리고 잠시도 책장을 놓을 수 없게 하는 흡입력으로 절찬 받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우리에겐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존재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의 질곡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여자의 안타까운 운명과 자기희생 그리고 사랑이 구원久遠에 이르게 한다.

미국 최고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노래하는 구원의 인간 드라마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다. 구소련의 침공과 왕정 붕괴, 군벌들 간의 내전과 그들을 타파하겠다며 총을 든 탈레반 정권,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아프간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정들었던 이웃들은 하나둘 고향을 등진 채 다른 나라로 피난을 가고, 남은 이들은 언제 어느 때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바로 폐허가 된그 땅에 남겨진 사람들, 그중에서도 이슬람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망명자로, 단 한 편의 데뷔작으로 미국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할레드 호세이니는 인터뷰에서 “현지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과의 대화에서 이 책을 쓸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등장하는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난 주인공들의 삶은 한 편의 소설이기도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실제 삶이기도 하다.
무자비한 한 남자의 아내로 있게 된 두 여자는 남편이라는 휘호 아래 갇힌 짐승 같은 삶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으로 그의 폭력과 가난을 헤쳐 나간다. 죽음의 땅에서 새로 태어난 생명을 지키기 위한 두 여자의 끈끈한 사랑과 노력은 인간 이상의 것을 향한 위대한 사랑에 도달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에게 테러와 납치가 밥 먹듯 일어나는 낯설고 위험한 땅일 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전무하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인권을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살고 있으며,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한다.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는 불모의 땅에서 그래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고 있는 그들의 현재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모든 인간의 삶을 새롭게 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 책의 제목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17세기 유명한 페르시아 시인인 사이브에타브리지(saib-e-tabrizi)가 카불에 대해 노래한 시에서 따온 것이다. 해당 시구는 다음과 같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

<추천의 글>

전쟁과 테러의 포연 냄새, 그리고 굶주림. 그러나 그 속에도 사랑이 싹트고 생명이 태어나고 공부를 가르쳐주는 스승이 있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석불을 보러 갔던 아름다운 추억과 태양이 있기에 삶은 지속된다.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미소한 사람들이 진실로 사랑했던 기억만이 희망이고 구원이라는 게 여전히 신비롭다. 무엇보다도 감동스러웠던 건 두 여자의 우정이었다.
_박완서(소설가)

페샤와르로 가는 여행길에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만났다.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 히드로 공항 대기실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책장을 넘겼다. 너무 슬퍼서 아름다운 이야기,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이야기 때문이었다.
타고난 이야기꾼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신비로운 색을 담은 씨실과 날실이 촘촘히 얽혀 아름다운 한 장의 카펫을 만들어내듯 서정적인 옛이야기와 가슴 아픈 비극이 가슴을 적시는 한 편의 대하소설을 꾸며낸다. 소련 침공과 내전, 탈레반 등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역사 이야기가 그의 손에서는 신기하게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변한다. 마리암과 라일라라는 두 여성의 이야기 속에서는 인간을 보는 따뜻한 시선과 이슬람적 윤회도 읽혀진다. 아마도 보기 드문 걸작으로 오랫동안 기록될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어야 할 이유는 독자에 따라 천 가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연을 쫓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호세이니의 팬이 된 나는 벌써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_이진숙(문화방송 워싱턴 특파원)

처참한 가난과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새로 태어난 여자아이를 지키려는 두 여자의 이야기에는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세계의 진실을 이 소설이 알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_이영준(문학평론가, 중앙일보 2007. 7. 27)

전작 『연을 쫓는 아이』에서 많은 것을 느낀 사람들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용감하고, 고결하며, 대범한 책이다!
_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

비밀스럽고, 강력하며, 아름답다. 인정받지 못해도 끝없이 인내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온 페이지들을 채우고 있다.
_O (오프라 매거진)

할레드 호세이니
1965년 3월 4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외교관 아버지와 고등학교 선생님인 어머니 아래서 태어났다. 1970년에 그와 그의 가족은 아프가니스탄 대사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란의 테헤란으로 이주하였다가 1973년 다시 카불로 돌아온다. 1976년에는 파리로 이동하였다가 마침내 1980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다. 1984년 캘리포니아 산호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샌디에이고에서 의학을 전공하였고, 1996년 로스엔젤레스의 시더사이나이 메디컬 센터 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의대 졸업 후, 캘리포니아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틈틈이 소설을 써, 2003년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를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그의 작품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매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작품에 수여하는 푸시카트 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5월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한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A Thousand Splendid Suns』으로 제목처럼 '찬란하게' 돌아왔다. 소련 침공, 군벌들 간의 내전, 탈레반 정권,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 등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현대사와 그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남겨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의 두번째 소설,『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출간 전 예약판매를 시작하면서부터 아마존닷컴 종합 베스트 1위를 차지하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자신이 쓴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이야기에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는 호세이니는 독자들에게 그처럼 비참한 처지에 놓인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고 있으며, 현재 난민들을 돕기 위한 NGO 단체(www.UNrefugees.org)에서 활동중이다.

목차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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